영원한 천국 - 한국소설 |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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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작품마다 독자들을 ‘정유정 월드’로 이끌어온 소설가 정유정의 신작이 출간된다. 《28》에서는 전염병을, 《진이, 지니》에서는 호미노이드를 다루며, 세계의 변화를 선험적으로 감지하여 그 안에서 가장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탐구해 온 작가의 이번 신작은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책, 《영원한 천국》이다. 악의 3부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악’과 대면하고 그것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작가는 이제 인간의 ‘욕망’과 정면 승부한다. 정유정의 선뜩한 펜 끝이 겨눈 것은 인간의 욕망의 끝, 그 아득한 지경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욕망은 점점 더 쉽고 간편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는 한,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욕망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극복한 영원한 세계에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모든 가능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최후에 남는 인류의 욕망은 무엇일까.
소설은 독자를 위해 준비된 거대한 블록버스터와 같다.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핍진한 세계를 구현한다. 소설의 한 축에는 유빙으로 둘러싸인 세계가 있다. 찾으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도망치려는 자와 기다리는 자가 모여 그야말로 ‘복마전’을 이룬다. 촘촘하게 구현된 인물들 각자의 욕망이 겨울바람처럼 매섭다. 또 다른 한 축에는 욕망을 먹고사는 기술자, ‘해상’이 있다. 타인의 욕망을 구현해 내는 스토리텔러이자 프로그래밍 기술자인 해상은 자신에게 들어온 하나의 기이한 의뢰를 따라 ‘경주’를 만난다. 그들이 만나는 곳은 ‘롤라’. 롤라의 세계는 빛나는 가상들이 만나 현실을 이루는, 가히 벤야민적 아케이드이다. 미래 인류의 가상 극장을 연상시키는 롤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게 되는가. 인간의 욕망이 교합하고 충돌할 때, 우리에게 남는 최후의 욕망은 무엇일까? 소설은 꽉 닫힌 아케이드의 한쪽 문을 열어 독자를 빠져나가게 한다.
작가는 이번 소설을 위해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와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을 직접 오갔다. 거대한 유빙에 포위된 어둠의 바다에서, 태초에는 바다였으나 이제는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의 한복판에서 소설을 길어 올렸다. 그래서일까. 이번 소설은 어느 때보다 차고 뜨겁다. 작가가 겨냥하는 바, ‘인간의 야성’을 닮았다. 500쪽이 넘는 압도적인 분량에도 불구하고 숨 쉴 틈 없이 독자를 몰아붙이는 지독한 몰입감과 피가 배어날 듯 생생한 인물,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는 서사는 이미 정유정의 시그니처다. 오직 그녀만이 쓸 수 있는 작품, 그 세계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생각보다 여기 재미있어. 복마전 같아.”
가상세계 롤라를 활용하여 의뢰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 해상. 그녀는 드림시어터를 만들어낸 초창기 설계자 중 하나지만 최근엔 의뢰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해상에게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드림시어터를 만들어 달라는 한 남자의 기이한 의뢰가 들어온다.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머뭇대지 않고 출발했다. 부르면 찾아가는 게 내 일이었다. 지금 내가 이 어둡고 낯선 거리에 서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고. 이정표가 알려주기로, 이 거리의 이름은 만경로란다.
-본문 9쪽
의뢰자인 경주의 기억은 비참하다. 도수치료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불운이 연이어 몰아닥친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의료사고로 직장을 잃고 설상가상, 자신과 싸우고 집을 나간 동생이 노숙자 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실의에 빠진 경주는 급여가 높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노숙자 재활시설 삼애원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상기후로 인해 유빙이 떠내려 오는 서해의 외딴 곶. 천애고원에 놓인 삼애원에 들어온 경주는 노숙자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듣게 된다.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에게 무작위 티켓이 발부되고 있다는 것.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경주는 동생 승주의 죽음이 이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마무시하게 돈이 많은 미국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는 거야. 아니다. 죽지 않는 게 아니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종이 된다지, 아마.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데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신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신이야. 아무튼 그 회사가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와 손을 잡고 신들이 거처할 세상을 만들었다 이거야.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병든 자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원한 천국.”
-본문 106쪽
죄책감에 시달리던 경주는 자신과 함께 보안요원으로 입사한 동기 박제이가 노숙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비밀리에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순찰을 돌던 경주는 삼애원 뒷산으로 향하는 의문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자국의 끝, 새벽녘의 차가운 눈밭 위에서 숙소에서 자고 있어야 할 제이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된다. 경주에게 업혀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 제이는 의식이 오가는 상황에서 해상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그 이해가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삶은 롤라 극장에나 존재할 것이다.
“내겐 운명의 설계 없이 살아볼 기회가 필요해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다면, 내가 그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본문 392쪽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 최후의 욕망, 야성
삶의 편리를 담보하는 기술을 넘어 예술과 철학의 영역에까지 진출한 과학기술을 목도하며, 우리는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라는 작중 인물의 대사가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임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인간성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나 고평가 없이 이 시대를 표표히 마주한 작가는 “뭐든 할 수 있으며 아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삶에 대해. 결핍이나 불운, 갈등 같은 골칫거리가 없는 세상에 대해”, 그 아득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상상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가는 문학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득한 영토에서 뜨겁게 손에 쥐어진 하나의 인간성을 마주한다.
소설 속 가상현실 롤라의 세계는 이 세계에 대한 거대한 비유다. 그러나 인간성은 영원히 아케이드 속을 헤매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드림시어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영원 속에서도 유희를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에 대한 가장 엄정한 방식의 드림시어터를 설계하고자 하는 경주의 욕망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 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본문 523쪽
어떤 설계도 없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그 날것의 세계에 뛰어들어 맞서보려는 욕망. 끝내 제 운명과 씨름하여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 인간 욕망의 끝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은 바로 이 펄펄 끓어오르는 야성이다. 두꺼운 유빙 아래의 추운 심해에서,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서 정유정이 길어 올린 것은 골수를 쪼갤 듯 날카롭고 압도적이며 뜨겁다.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 이토록 선연한 이유다.
본문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머뭇대지 않고 출발했다. 부르면 찾아가는 게 내 일이었다. 지금 내가 이 어둡고 낯선 거리에 서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고. 이정표가 알려주기로, 이 거리의 이름은 만경로란다. (9쪽)
“네 말이 다 사실이라 치자. 그래도 난 이해를 못하겠네. 과학이 왜 인간한테 그런 짓을 해?”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야.” (322쪽)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그 이해가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삶은 롤라 극장에나 존재할 것이다.
“내겐 운명의 설계 없이 살아볼 기회가 필요해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다면, 내가 그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392쪽)
“백지의 의미를 잘 생각해봐요. 무작위와 무한정의 시공간에 스스로 죽는다는 표지를 명확히 세울 수 있겠는지. 로또에 맞으면 나는 부자가 될 거야,라는 가정법과 비슷해요. 로또가 나를 피해 딴 사람에게만 간다는 점에서.”
“방법이 없습니까?”
나를 보는 그의 눈에 이해와 답답함과 간절함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나는 머뭇대지 않고 대답했다.
“없어요.”
“절대로?”
대답 대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도 일어났다. 우리는 말없이 상대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침묵이 끝도 없이 흘러갔다.
“그렇다면 나는…….”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395쪽)
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 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523쪽)
목차
- 1장 해상, 롤라2장 경주, 삼애원
3장 해상, 롤라
4장 경주, 삼애원
5장 해상, 롤라
6장 경주, 드림시어터
에필로그 롤라
작가의 말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기억해 주시기를.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소중한 무기라는 걸.
정유정
장편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핀란드, 중국, 일본, 브라질 등 해외 22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장편소설 《진이, 지니》 《완전한 행복》이 있다.
출생 : 전라남도 함평
수상 : 2009년 제5회 세계일보 세계문학상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을 들으면 갸우뚱하게 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닐까요
행복은 삶에서 얻어지는 가치여야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생기는 불행과 좌절까지 받아들여야 완전한 행복이지 않을까요
특이하게도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출신으로,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고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한 입지전적인 케이스다. 이전에 몇 편의 소설을 출간했으나 실질적인 등단작은 수십 번 등단에 도전한 이후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2007)로 본다. 이후 비슷한 시기 주목받은 김려령, 구병모 등과 함께 청소년 작가로 굳어지나 했는데, 다음 작품 〈내 심장을 쏴라〉(2009)가 1억 원의 고료를 자랑하는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문학상 수상'을 노린작품이 아닌 작가자신의 성향을 밀어붙인 굵직한 소설을 발표하게 된다.〈7년의 밤〉(2011), 28(2013), 〈종의 기원〉(2016)이 연달아 히트하며 대중적 인지도와 문학적 평가 면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소설 외의 작품으로는 2014년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에세이 〈히말라야 환상방황〉이 있다. 특히 〈7년의 밤〉은 〈28〉이 발표되었을 때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종의 기원〉이 발표되었을 때 또 베스트셀러에 올라왔다. 90년대 공지영의 소설 세 권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동시에 올라간 이후 처음 있는 일.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인간의 악'이다. 그의 소설이 순문학적으로도 고평가받는 이유로, 악을 마주한 인간의 본성을 깊이 탐색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그의 소설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악인이 아닌, 말 그대로 절대적인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반드시 등장한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고증과 탐구는 대단한 수준이며,정유정의 작품은 이러한 절대적인, 결코 풋내기가 아니며 교활하고 집요한 절대악에 직면하게 된 인간들의 반응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악에 대한 탐구는 결국 〈종의 기원〉에서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내세우며 일단 방점을 찍었다. 〈7년의 밤〉,〈28〉, 〈종의 기원〉으로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삼부작'이 완결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작가 본인도 〈종의 기원〉 작가의 말에서 악인들을 주인공의 반동인물로 등장시키는 것으로는 부족했고, 결국 악인 스스로가 되어야 만족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종의 기원〉까지 삼부작 이후 3년 만에 출간된 〈진이, 지니〉에서는 작품의 테마가 다소 바뀌는데, 이전 작품들이 인간 내면을 파고들며 인간의 악을 치밀하게 묘사한다면 〈진이, 지니〉는 선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악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이, 지니〉에서도 보노보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악이 묘사되기는 하지만, 소설의 초점은 인간의 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이전 작과 달리 절대적 악인은 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소한 악을 범한 주인공들이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숭고한 선택을 하는 과정이 소설 전반에 그려진다. 작품의 분위기도 이전 작품과 달리 눈물샘을 자극하는 따뜻한 이야기이며, 장르도 판타지적 설정이 가미되어 있다. 이전 작품들에서 인간이 악한 존재임이 강조되어 인간의 삶의 의미가 다소 허무주의적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면, 〈진이, 지니〉에서는 인간이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 공감하며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죽음과 삶의 실존적 의미를 드러낸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은 경주는 바닷가 재활시설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동료 제이를 만난다. 제이는 가상세계인 롤라와 개인가상세계인 드림시어터를 설계한다. 경주는 가상세계를 만든 해상에게 삼애원을 겪고 난 후 30쪽을 추가해 달라 한다.
자기애와 행복은 어떤 관계인가요?
모든 매체에서 행복해야 하고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행복을 강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게 맞는 것일까 하고 행복에 대해 다시 설정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인류는 행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왔습니다. 삶을 충실히 살아나갈 때 자존감도 생기고 그러면서 느껴지는 찰나를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행복강박이 나르시시즘을 부른다는 건가요?
나르시시즘은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성향도 강해져 자기가 속한 집단에만 지나치게 확신하고 내로남불 합니다.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갈등으로 대화를 통해 가까워져야 하는데 대화할수록 갈등이 더 생기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자존감은?
이야기를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욕망으로 종의 기원을 쓸 때 사이코패스청년을 그려야 했는데 잘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2년이고 3년이고 완성하려는 욕망이 극단으로 가면 어떨지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신춘문예 11번떨어지고 12번째 당선되었고 항상 재능이 부족하다 느낍니다. 나는 세상을 겨우 사는 사람 같다고 느껴요.
글을 쓰는 게 좋으니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