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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고백 overjoyed 자신을용서하기

by MOVIE75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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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

 

종합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20년 넘게 근무 중입니다. 교회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기 시작하였고, 주님은 대학 때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2001년부터 사랑의 교회 출석 중이며 현재 순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신장암 투병 중입니다. 주위에 암 환자도 많고 아프신 분들도 많습니다. 육신뿐 아니라 마음이 힘드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 글은 큰 기적이 있는 간증이 아니고 저의 개인적인 일기이자 신앙 에세이입니다.

2019년 2월 18일. 객석에 앉아 있던 내가 무대에 올려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 그걸 알아챈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텅 빈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첫소리가 들렸다. 관객 한 사람이 들어와 앉는 소리 같았다. 낮고 흐린 조명이 객석을 비췄다.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였다. 나였다. 흐름은 알 수 있었지만 잴 수는 없는 시간이 흘렀다. 하나씩 여럿씩 객석도 채워지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24일. 주님이 오신 크리스마스 전날. 처음으로 독백했다 암 진단을 받은 지 벌써 4년이네. 내가 살아온 4년 중에 이렇게 긴 4년이 있었을까?" "그래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어. 이젠 시작해야겠다. 내 역할을 해야겠어." "하나씩, 차곡차곡, 남겨보자." "내가 서있는 이 무대에도 조명이 켜진다면 고백하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는 기쁨을 객석의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청소년과 신생아 세부 전문의로 경기도 종합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20년 넘게 근무 중입니다. 교회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기 시작하였고, 주님은 대학 때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2001년부터 사랑의 교회 출석 중이며 현재 순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신장암 투병 중입니다. 주위에 암 환자도 많고 아프신 분들도 많습니다. 육신뿐 아니라 마음이 힘드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 글은 큰 기적이 있는 간증이 아니고 저의 개인적인 일기이자 신앙 에세이입니다. 아픈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50이 넘은 나이 덕분에 직장 건강검진에 초음파 항목이 추가되었다. 아침 금식을 해야 했는데, 오늘 있을 과 회식과 이번 주에 줄줄이 예정된 신입 전공의 환영회, 퇴임식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로 깜빡 잊고 아침을 먹고 정신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 못하면 또 날짜를 잡는 것도 복잡 하니 그냥 진행할까?’ ‘바쁜 일도 많은데 하지 말고 뒤로 미룰까?’ 운전하며 고민하다 그냥 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를 뽑으며 “금식하셨죠?” 질문에 대답은 못 하고 괜히 다른 질문으로 얼버무리고, 초음파 방에 누워 ‘아침 먹었다고 혼나면 어떡하지?’ ‘빨리 끝내고 가서 해야 할 일들은 뭐지?’ 떠올리고 있었다.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스크롤을 한참을 돌려 길이를 재시더니 초음파 화면을 나에게로 돌리고 신장에 큰 종양이 있으니 당장 비뇨의학과 진료를 보라고 하셨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비뇨의학과 당일 진료를 보고 복부 CT를 찍자마자 판독을 위해 영상의학과 선생님을 찾았다. 옆에 같이서 있던 영상의학과 친구와도 함께 별거 아닐 거라는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화면에 영상이 나오자 갑자기 침묵이 돌았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험상궂게 생긴 종양이 왼쪽 콩팥을 파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신세포암 맞고요, 사이즈가 커서 6cm 넘고요. 자세히 봐야겠지만 지방 침윤이 있는 것 같네요.” 이 말을 듣고 처음 드는 생각은 ‘내가 죽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했나 보네
그런데 애들은 아직 군대도 안 간 은찬이, 재수한다는 주헌이는 어떡하지? 남편은 나 없이 못 살 것 같은데? 아니다, 내 미션이 끝나서 부르신 거라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지. 알아서 하시겠지. 근데 나 혼자 천국에서 편히 지낸다니 너무 미안하다 수술을 위해 추천해 주신 세브란스의 한 선생님께 예약 날짜를 잡고, 당일 예정된 저녁 회식을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불참을 양해해 주셔서 집으로 왔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 드릴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울자, 남편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정신없는 첫 밤을 지냈다.
다음날은 신생아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진료하며 “다음엔 두 달 후에 보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두 달 후에 다시 볼 수 있나?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일 있을 전공의 환영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고, 이번 주의 큰 행사인 퇴임식 걱정하고 있고 내려 놓아야겠다. 아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하려는 것으로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중학교 때 배운 “이너시아, 관성의 법칙”이 떠오른다. 가던 곳을 계속 가려는 성질. 이제는 멈추고 쉬는 것도 배워야 한다. 지난 주말에도 여러 일들로 몸이 분주하고 마음이 무거워서 한
달만 도망가서 쉬고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친구 영민이와 나누었었는데,이렇게 바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올 줄이야.
유언장을 쓰려고 사다 놓은 그 많은 편지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엔 죽음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서 왜 고쳐 주셨을지, 왜 살아야
하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결국 유언장은 쓰지 않았고, 편지지는 이사하면서 어디로 갔는
지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느낀 overjoy를 써 내려간 이 글이 유언장을 쓴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는 모르겠다.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3번이나 수술했고 앞으로 면역항암 치료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해 조금은 더 알게 되고 깨닫게 된 하나님 때문에, 맛보아 알게 된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내 안에 영광으로 거하시는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암 진단받기 이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고 기쁘다.

"탈고가 뭐예요?" 편집자님과 대화하다 물었다. 책을 내기 전 자신의 글을 다시 읽어보고 고치는 중요한 과정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무지한 내가 탈고를 마치게 된다니... 편집자님과의 만남도 갑자기, 뜻밖에 이루어졌으니... 이 모든 과정에 감사를 드린다. 처음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린 이유는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자는 생각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삶에 숨겨두신 기쁨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글을 나누며 기쁨이 더 풍성해짐도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드릴까 생각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훗날 나의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에게도 이 책을 나누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좋은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고 가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overjoyed


이 글의 가제를 처음엔 ‘나의 일기로 적었었는데 갑자기 ‘overjoyed’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쓰다 보니 그동안 하나님께 서 내가 가는 길 곳곳에 기쁨을 예비해 놓으신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러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복이 있기를 소원하며 글을 마친다.
먼저 경험에서 얻은 귀한 깨달음을 아름다운 글로 남겨 책으로 발표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은 “문학은 나를 세상에 붙들어 매주는 구원의 닻”이라고 표현해 주셨는데요. 참 멋진 표현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하고, 그 생각이 작품활동을 하시는 데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여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습니다. 항상 책을 읽다 보니, 저에게 책은 주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책에서 위안을 얻었고 몇몇 작가들의 작품은 제 외로움을 덜어주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저는 공감을 구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현실을 이야기할 때 소설이 기사나 에세이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감정과 심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1988년 제 파트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 저는 자살을 다루는 책을 찾았습니다. 그때 저는 자살이 등장하는 소설은 많지만, 이를 서사의 중심에 두는 작품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대부분 남겨진 이들이 아니라 자살한 이에 초점을 두고 있었죠. 언제나 책에서 위안을 찾았던 저인데, 막상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 제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자살을 다루는 뛰어난 작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20년이 넘게 지난 후) 《남겨진 자들의 삶》을 집필하면서 저는 이 책이 그런 공백을 메꾸는 작품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저와 같은 불행을 경험한 사람이 많지만, 이들을 다룬 책이나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저는 생존자들이 겪는 과정을 다루는 책을 집필하는 것이 작가로서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겪은 것과 유사한 상황을 다룬 책에서 독자가 얻는 위안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저는 이 과정이 책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몇 년 전에 심리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굳이 저를 위해서 글을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20년에 걸친 세밀한 준비 끝에 저는 드디어 타인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됐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소설의 기술을 사용해서 독특한 구조와 양식을 선택했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저는 때로는 일부 요소를 수정하고, 세부 사항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특히 저의 전 파트너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피하고 정확한 지역명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선택은 현재시제 사용입니다. 시간의 거리를 지워버리고 20년도 넘은 먼 과거에 일어난 비극을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처럼 묘사한 이유는 저에게 그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도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서사적 선택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제가 이 작품을 픽션으로 다룬 이유는 이 이야기가 제 감정을 분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도 서술했듯,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사실입니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순서는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작가의 선택일 뿐, 이야기가 다루는 심오한 진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용문들이 뒤에 이어지는 글들을 주제 측면에서 아우르는 느낌이 들었고, 감상의 몰입도와 밀도를 한층 높여주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조앤 디디온의상실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고 오션 브엉은 관심은 있었는데 작품은 이번 작업을 계기로 접하고 좋아하게 된 작가입니다. 작가님은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주로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에서 저는 아픔과 애도, 상실을 주제로 다룬 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했습니다. 인용문들을 삽입한 이유는 제 이야기와 저 이전에 이미 이러한 이야기를 쓴 작가들의 작품 간에 일종의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소설의 목적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저와 비슷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기에, 다른 작가들의 증언을 포함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동료 작가들과 대화를 통해 제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다른 많은 이들과의 경험과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요.
작가가 자서전적 작품, 그것도 지극히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기 위해서이거나 작가 개인의 경험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자신의 고통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제 글에 영향을 미친 작가들로는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 미국 작가 데이비드 리빗, 이탈리아 작가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라 등이 있습니다. 스타일이 전혀 다른 작가들이죠. 저는 이들의 책을 읽으며 작가로 성장했고, 이들의 작품은 지금까지 제가 쓴 많은 소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독자들과 고통을 공유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신을용서하기

저는 신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심지어 삼촌 한 분은 신부님이고 이모 한 분은 수녀님이죠. 저는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이십 대 초반까지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러다 신앙을 잃고,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죠. 그 후 저는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퀴어라는 제 정체성도 이러한 결정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가톨릭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이 책 작업을 막 맡게 되었을 때는 저와 어릴 적부터 친했던 제 또래 친척 오빠가 얼마 전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오빠가 그런 무서운 결심을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난 왜 아무것도 몰랐지?’ 하고 자책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책에 쓰신,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직장 동료를 작가님이 위로한 장면에서 저도 함께 위로받는 느낌이었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특히나 자살로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일을 막는 데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합니다. 작가님 역시 그러셨고 책에도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잘 담겨 있는데요. 지금도 남겨져 자책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죄책감은 자살한 이를 떠나보낸 가족에게 남겨진 가장 무거운 유산입니다. 모든 남겨진 자들은 자신이 과연 자살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왜 자살이 일어나기 전에 개입하지 못했는지, 왜 고통의 징조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등의 의구심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죄책감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한 인간을 자살로 몰고 간 근본적인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고, 대게 주변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고 들은 자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아내, 어머니, 자식 생각도 이들의 자살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그 고통을 멈추고 싶은 욕망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외부 세계와 이어주는 인간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불행히도 자살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은 모두 영원히 풀리지 않을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성과는 거리가 먼 사건에 대해 이성적인 설명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자들은 진심으로 돕고 싶었지만, 떠난 이들을 도울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요.
평소 한국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두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굴곡진 근현대를 지나 사회 전반에 다양한 변화와 위기를 겪고, 최근에는 안타깝고 가슴 아픈 두 번의 참사(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이고요. 저는 유난히 비탄의 소재가 많은 한국 사회에 이 책이 따뜻한 위로로 다가가길 바라는 희망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국은 매우 매혹적인 나라입니다.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꼭 방문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제 친한 친구가 한국 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곧 서울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그 친구는 한국에 가기 위해 2년 전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을 방문해서 제 소설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꿈만 같을 거예요.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독자가 제 책을 읽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비단 생존자들만 제 책을 읽고 위안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제 책을 읽고 처음으로 자신들의 행위로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을지 깨달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깨달음 덕분에 이제 더는 자살 시도를 하지 않게 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정말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설 집필 과정에서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한밤중에 일어나 과연 이 작품을 끝마칠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죠. 이토록 내밀한 고통을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출간 후 책 소개, 인터뷰, 문화 축제 등을 소화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과연 그 모든 것을 감당할 힘이 저에게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보니 이 책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집필을 끝마쳐서 매우 행복합니다.
이탈리아라는 머나먼 나라 작가의 글이 친지를 잃은 생존자들이나 그러한 비극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게 위안을 준다면, 제 목표를 달성한 셈이죠.
그냥 읽기만 하면 우리의 뇌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자기 분별의식의 필터로 걸러서 왜곡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필사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가르침을 자기 생각으로 거름 없이 흡수할 수 있습니다. 뜻은 깊어지고, 분별의 필터를 뚫고 들어가 심연의 지혜에 닿게 되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좋아하거나 집착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을 괴로움으로 몰고 간다. 심지어 타인들까지 괴롭히기 쉽다. ‘반드시’ 해야 할 어떤 것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어떤 것도 품지 마라.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일은 언제나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은 어떤 완벽한 상황이 갖춰졌을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누릴 때 바로 그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고 어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다. 행복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낱낱이 떨어져 있는 개별성의 존재가 아닌 ‘하나임’의 존재다. 마치 꿈속에 온갖 사람과 사물과 스토리가 있지만 그 모든 꿈속의 삶이 사실은 ‘꿈꾸는 자’ 하나의 것이듯.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 행하는 일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상대방에게 먼저 행하라. 그러면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처럼, 존경하는 스승 앞에 섰을 때처럼 그런 마음으로 모든 존재 앞에 서라. 세상 모든 것들을 공경, 존중, 찬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 다르지 않다는 연대 의식을 갖는다면 그 마음이 바로 나 자신을 드높이게 된다. 세상을 존귀하게 여길 때 나 또한 우주로부터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
가능하면 크고 밝고 원만하며 이타적인 원을 세워라. 다만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아라. 그저 원을 세우고 나아갈 뿐, 결과는 우주에 맡겨라. 그때 원의 힘은 가장 강력해진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는 마음이기에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 없이 바라는 바를 순수하게 저질러 행할 때 당신은 가장 강력해진다.
자비와 사랑에는 이유가 붙지 않는다. 무엇 무엇 ‘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받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기꺼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하라.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그저 사랑할 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뿐만 아니라 미래의 오늘까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안 해놓았다면 미래의 오늘 역시 똑같은 하루를 보내게 될 테지만, 오늘 무언가를 열심히 해냈다면, 그 무언가는 미래의 오늘에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오늘을 믿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어쩌면 일도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뒤처지기 싫어서 제 속도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도를 맞춰서 더 이상 뛸 힘이 없어지게 되는 것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멈춰있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도착할 테니까요.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다 완벽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내려온 결정들 덕분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것들과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소비해 왔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며, 관계에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 보는 것이죠. 어떠한 것도 ‘나’라는 고유명사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나를 꾸며줄 수많은 수식어가 있겠지만, 저는 부디 당신이 당신만의 고유한 방식대로 인생을 꾸며가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을 비웃거나 비난하거나, 관심조차 갖지 않습니다. 모든 시작에 있어서 손가락질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론가 묵묵히 달려가거나 꾸준히 한다면, 결과가 어찌 됐건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손가락 역시 하나둘 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다 펴진 손으로 박수를 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안다는 것은 삶을 거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닌, 감정에 휩쓸려 섣부른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닌, 삶을 여행으로 대하게 만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죠.
피어오른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결과라는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언제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내면을 수양하고 바깥으로 드러나는 삶의 태도를 가다듬는 데 중점을 둡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는 성난 파도를 다스리고, 내면의 고요함을 통해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법을 알려줍니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 12쪽, 마음의 성난 파도를 다스리며
몸을 깨끗하게 하고 나면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피로와 불순함을 털어내고, 고된 짐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다다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단정한 몸과 마음을 가꾸는 이 작은 실천
은 우리를 더 깊은 평온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일 중에 영원히 계속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사물과 일에 내재해 있는 일시적인 속성을 깨닫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는 열쇠가 됩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 맑은 하늘을 맞이하듯,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깨달음을 얻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면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들을 없애보세요. 각각의 행위를 완결지음으로써 원인을 줄여나갑니다. 오로지 현재에만 관심을 두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정해진 목적이나 운명 혹은 숙명이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자유롭게 놓아주세요. 이러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개방
성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한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이상에 매몰되지 말고, 매 순간 자신과 주변에 평화를 심는 작은 행동을 실천하세요.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비로소 세상으로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신장에 좋은 음식:과일, 채소, 식물성지방, 저칼로리, 적당탄수화물, 단백질
신장 안 좋은:과도육류, 날음식, 튀기거나 구운 음식, 담배, 비만
오늘은 어제와 내일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어제 시작한 일이 오늘까지 계속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오늘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내일 하고자 하는 일이 오늘 시작될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오늘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매일 아침이 새로운 하루입니다. 너무 진부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가 그런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굳이 삶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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